동한 말 등장한 반절(反切)과 그 뒤를 이어 사성(四聲) 발견
시를 지을 때, 반절과 사성의 발견으로 시의 운율을 더욱 더 중시하게 됨.
압운 가능 여부를 따지기 시작하고 동운자를 모아놓은 운서가 필요하게 됨.
한시(漢詩)를 지을 때, 서로 압운(押韻)을 할 수 있는 한자(漢字)들을 기준으로 삼아,
Ⅰ. 들어가며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 것을 총칼로 누르는 어문 말살 정책을 썼다. 당시의 우리 겨레에게는 우리말을 쓰는 것이 민족정신을 가다듬는 한 방편이었고 우리글을 쓰는 것을 일종의 독립 운동으로 여겼으니 그 때에는 한글이 곧 우리 민족정신의 의지할 곳이었다. 이
Ⅱ. 한글의 창제 원리
1. 훈민정음 창제 이전
1) 차자표기법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할 경우 그 글자의 본래의 뜻을 살려 사용하는 경우와 본래의 뜻은 버리고 그 음만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를 독(讀)의 원리라 하고 후자를 가(假)의 원리라고 한다.
2) 차자표기의
2. 훈민정음의 창제
1) 훈민정음 창제원리
(1) 훈민정음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을 말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첫 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
3)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
(1) 자음과 모음의 원리
① 자음의 원리
자음은 소리에 근거하여 사람의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 즉, 발음을 할 때의 혀, 입술, 이, 목구멍의 변화를 잘 관찰해서 그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 ‘ㄱ, ㄴ, ㅁ, ㅅ, ㅇ’를 만들었다. ㄱ과 ㄴ은 혀가 입안에서 구부러지는
봐도 당시에 이미 민간에서는 자모순이지금과 똑같은 반절이 쓰이고 있었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단적으로 이희승은 ‘한글 마춤법 통일안 강의’에서 자모의 순서는 “한글 學習의 標準的 敎本이 되던 ‘반절’(反切)에 依하여 決定”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1.2. 소리에 관한 것
[돌다리 두드리기]
反切(반절)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고 四聲의 발견도 이루어지면서 일련의 음운에 대한 인식이 진전되어, 운서가 탄생할 조건을 갖춘다.
최초의 운서는 삼국시대 魏나라의 리떵(李登)이 지은 『聲類(성류)』라고 한다. 그와 항상 병칭되는 晉人 뤼징(呂靜)의 『韻集(운집)』도 있었다. 또 절운 이전
1443년(세종 25년) 완성되어 1446년 음력 9월 상순(양력 10월 상순)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말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한때 언문(諺文)·언서(諺書)·반절(反切)·암클 등으로 낮추어 불리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는 한글이라고 한다.
이러한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이라
Ⅰ. 서 론
우리나라 한민족은 한글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검증도니 가장 우수한 언어임에 틀림없는 사실을 누구나 주지하고 있다.
‘한글’을 애초에 ‘훈민정음’이라고 이름하던 세종(世宗) 창제 28자는 언문(諺文)·언서(諺書)·반절(反切)·암클·아햇글·가갸